top of page

Create Your First Project

Start adding your projects to your portfolio. Click on "Manage Projects" to get started

Serial possibility

프로젝트 유형

Serial possibility_ Dimention Variable_mixed media 2015

날짜

2015

위치

seoul,korea

2015년도 롯데 에비뉴엘 개인전

정헤련의 입체드로잉
- 공간 속 분열과 반복 아래 투영된 삶의 불확실성

홍경한(미술평론가)
1. 롯데백화점 월드점 에비뉴엘에서 선보인 <연쇄적 가능성 Serial Possibility–Planet>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작가 정혜련은 자신의 삶을 대입한 시간의 무화(無化)와 존재의 불확실성(不確實性)을 보여준다. 작은 부품의 집합인 모듈(module)을 통해 구동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스스로 존재를 공간 속에서 무화하고, 무의 본질인 무화는 그것을 지탱하는 존재자 안에서 시공을 재생산하며 존재자를 더욱 존재자로 남게 만든다. 이러한 철학적 개념은 감각적인 여백이 물씬한 공간드로잉으로 확장된다. 불특정적이고 가변적인 장소에 펼쳐지는 이들 공간드로잉은 작가와 우리가 동시에 살아가는 세상의 구조에 대한 불확연한 연계성을 의미한다.이들 작품은 2000년대 이후 선보인 작품들 대비 온전한 낯섦을 불러오진 않지만 진부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증명한다. 어쩌면 포스트디지털 세대가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에서 꾸준히 다뤄온 형식이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의제를 안고 있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이는 시각적 변동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다양한 기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언급된 기의란 바로 일정한 제도와 범주에서 삶을 영위하는 우리네 자화상 또는 인간 사회의 여러 층위(혼잡하고 불명확하며 혼돈스러운)의 투영이다. 달리 말해 이는 동시대를 숨 가쁘게 살아가는 사회상을 반영한 것처럼 비춰지고, 동일한 구조 체계에서 되풀이 하는 일상을 공간과 시간 속에 녹여낸 것이 아닌가싶은 여운을 전달한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우선 눈에 띄는 건 정교한 장치의 무한한 움직임이다. 공간 곳곳에 머문 채 얽히고설키며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이 수공예적장치들은 구동하는 속도와 크기가 저마다 달라, 혼돈 속 규칙부터 읽도록 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제한된 동선을 그리고, 허공에 매달려 있는 불규칙한 형상을 한 여러 작품들(드로잉) 사이에서 시각언어가 지닌 내러티브를 드러낸다. 이 중 공간을 유영하는 비정형의 곡선들(공간 입체드로잉)은 하나같이 의미와 상징체로 남을 뿐, 세상사가 그러하듯 딱히 정의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의 작품 속엔 어떤 가시적인 메시지라기 보단, 작가의 내면에 똬리 튼 기억과 의식, 삶의 단락이 관람자와 작품 간 매개인 동정기호에 의해 순차 혹은 교차 교류됨을 지정한다는 사실에 있다. 반면 전시장 구석 박스형태의 공간에 놓인 한 작품은 광확산수지(발광 플라스틱)에 의한 강렬한 빛과 어둠 속 시각물이 교차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여운을 통해 세상에 드리워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되묻는다. 아니, 연쇄적 가능성’(Serial possibility)이란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확장하며 소급되는 유무형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건 곧 일차적으로 작가자신이지만 누구도 대치될 수 있다. 형식상 이 작품은 빛과 리듬이라는 기표로 부상하지만 공간이라는 불확실성, 무한변주가 가능한 공간이기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더욱 짙고 강하게, 그러면서 느낌으로 정의되는 알 수 없는 여백이 훨씬 두드러진다.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특히 붉
고 검은 배경의 조화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명료한, 공간이라는 장소 특정적 언표가 명확한 드로잉으로 존치된다. 이는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사고의 연상이 하나의 공간 아래 부유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즉, 삶의 주변으로부터 획득한 그 무언가가 공간과 시간, 사물과 인식 간 분할과 결합의 이중성 및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아래 조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더불어 여기서 설명한 작품들은 2011년 경 발표한 <Fantastic Memory> 연작이나 2013년 <추상적인 시간(Abstract time)>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그러나 근래 작품들은 <Fantastic Memory> 연작은 물론, 2010년경의 <이상적 세계 2010(Wonderful world 2010)> 대비 사족의 배제가 눈에 띈다는 점에선 일부 다른 지점이 발견된다.
정혜련의 작업에 대해 과거 어느 글에서도 논한바있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일종의 건축이되 움직이는 건축이고,
동적이지만 우리가 거주하는 고착된 공간이라는 프레임에 놓여 있다. 나무, 발광 플라스틱, 천 조각, 모래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물리적 실체이지만 그것은 공간 속에서 기억을 재생하고 상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가상의 문으로 기능한다. 물론 우린 그의 작품을 보며 그 문을 실험적 알고리즘(상실, 복원, 환유, 재구성 등등)을 열람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작가 자신의 기억 속 형태들을 훑는, 다면적이고 추상적인 드로잉이 어떻게 동시대미술의 언어로 구술되는지 확인하게 한다. 허나 공간드로잉 연작에선 (일정한 속도를 지닌 채 구동하는 이것들은) 평범함 혹은 낯익음을 현실과 다른 세계를 엿보게 하여, 이성이 아닌 감성과 상상의 무대로 방향을 옮기기도 한다. 흡사 뫼비우스의 띠 마냥 돌고 돌아 교차하며 제자리를 찾는 곡선의 조형 요소를 통해 잃어버린 세계, 잊어버린 장소와 기억으로 인도한다는 것, 그게 매력이다. 2014. 네이버 헬로아티스트 오늘의 작가 中이를 달리 말하면, 그의 작업은 고정적이면서 역설적으로 흐름이 존재하는 탈시간성, 공간에 고착되어 있지만 되레 탈공간성을 지향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매우 느린 사유를 전제로 하며, 실제로도 그의 작품들은 눈에 띄게 동적이지는 않다.
흥미로운 건 작가의 작업 태도 역시 시각결과물과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필자의 판단에)친근하게 수동적이고 정겹게 느릿하
다. 구두 표현조차 차분하듯 작품 역시 낮은음에 머문다.(그의 작업에서 확연한 속도감을 체감할 수 있는 건 드물다. 대부분 재지 못
하고 느림으로 구동한다.) 작품이란 작가 자아의 또 다른 형태임을 각인시키듯 작가 자체가 시끌벅적하지도 부단한 욕망으로 다가오
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건 작가 자신의 삶이 그렇게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자신의 작업노트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작업이 위치하는 지점은 매우 고요하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의지가 나를 작가라는 위치에 두지 않았다. 그저 아침에 먹는 음식이나, 선택되어진 옷가지들 그것들을 먹고 입
는 행위를 하듯 내게 작업은 그런 존재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기에 운명이나 숙명과 같은 거창한 단어로 포장하
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껏 이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인연이었음에는 부인하지 않는다. 이렇게 밋밋한 태도로 무슨 작가의 길을
갈 수 있느냐고 물어 볼 수 있겠지만 난 이 수동적, 반복적 삶에 매우 만족하고 집중할 수 있다. 그것이 나인 것이다.”고 덧붙이고 있
다.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수동적, 반복적 삶에 매우 만족하고 집중할 수 있다”는 고백이다. 여기엔 과거 선보인 개인의
감성을 통한 사회 구조와 문제를 비트는 작업(국회의사당이 등장하는 등의)은 다소 열외로 한다. 2007년부터 2010년경 선보인 (부산
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출품된)<놀이공원>과 같이 기억의 잔상에 천착한 작업들도 일단은 배제된다. 대신 근래에 이르러 정혜련의 작
업 방향은 시간과 공간의 유영에 보다 몰입하며, 나와 타자 간 심상의 교류나 존재본질에 대한 탐구와 감각체계 속에 흩어져있는 감
성의 본원으로서의 미학이 뚜렷하다. 즉, 2000년대 중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억과 현실-내면-느낌이나 감성-무의식으로의 전
환 또는 변화가 이뤄졌다면, 후기로 갈수록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나와 삶에 연관된 내외적 환경과 시간 및 공간에 관한 해석이 명징
해지고 있다는 것이다.근작에 있어 또 하나 변화된 것을 꼽으라면 다름 아닌 설명의 배제이다. 더 이상 그의 작업에서 강렬하고 단도
직입적인 언어는 엿보이지 않는다. 일례로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웅의 집(The house of
hero)>(2006)과 같은 직접적인 언표는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 곁에 존재하며 공유되는 모든 감정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립될 수 있는지를 극적이며 유희적인 상상력으로 보여주고 시공을 증폭하는 로우테크놀러지적 장치를 통해 관람자들의 각자 다
른 기억까지 교합시켜 끊임없이 새로운 조형을 구축한다. 이는 “(근작의 경우)무질서와 불규칙성을 부여함으로써 단선적인 메시지
전달을 회피하고 의미생성의 층을 두텁게 만들고 있다.”는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이 말한 것처럼 의미생성의 무한성, 우연
성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가리킨다. 오늘날 정혜련의 작업은 철학적 인간학, 즉 인간의 자기규정에 대한 불확실성에 오는 불안을 극
복하기 위해 ‘인간은 무엇인가’를 되묻고, ‘일탈 공간의 가속화’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빌려온 환경에 의존한 채 작동하고, 주
어진 물질들, 환경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 그리고 그것들로 그려낼 수 있는 이미지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우
연적 움직임들에 주목하고 있음”을 일러준다. 이것은 어떤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해 가는 모든 것들에 의해 증식 가능
하고 확장할 수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자, 파편화한 기억의 조각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집약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전시에도 이전 사회적 문제의식의 노골적 표현이나 인간 소외, 정치적 문제와 같은 즉시적 드러남은 보이지 않는다. 그 보단 삶
의 섬세한 결을 들여다보라 권한다. 자신의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기억의 기제를 시각언어로 치환하고, 감각으로 수용한 다양한 의
미들을 무의식적으로 시공 아래 표제화 하여 사유를 공유하고 질문하고 답을 끌어내길 주문한다. 이 전시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모든 작품들이 그렇게 일부 정적인 움직임으로, 일부는 침묵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도 반드시 그래야만 짚을 수 있는 맥을 지니고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혜련의 작업은 더 이상 논리와 판단, 이성과 수학적이지 않은 채 감각체계 속에 흩뿌려진 반이성적인 차원에
서의 기억을 불러 모으고 삶의 움직임, 분열, 조합을 재생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쇄적 가능성 Serial Possibility–Planet> 전에
출품된 정혜련의 작업은 이처럼 끊임없는 변화의 상태를 보여주는 열려있는 상태의 것이며, 동시에 그의 작품 역시 연속적으로 이어
지는 삶의 연속선처럼 리듬감 있게 변화하고 움직이는 기호로 기능한다. 이는 어쩌면 작가에게 있어 살아 있는 것, 관계된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새롭게 사유하고 공존하며 공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틀리지 않다. “현실에 놓인 모든 것들은 서로에 의해 원인
과 결과의 관계를 지니며 각각은 끊임없는 무언가를 발생시키고 있다. 발생된 반응들은 에너지가 되어 삶을 지속시키고 있는 원동력
이 되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그것을 증거 한다.■

bottom of page